어른드이 힘들기는 하지...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삶이 스트레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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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ing Care] 어른들의 색칠놀이…도시인을 쓰담쓰담하는 컬러링북

그림에 소질이 없어도 감각적인 컬러 조합엔 자신없다해도 상관없다. 다른 누구와 비교되거나 평가되거나 경쟁할 필요 없이 꽃, 나비, 올빼미들에 공들여 색을 입히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정화되어 간다.

컬러링북의 열기가 지루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11월 베스트셀러 순위(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8곳에서 판매한 부수 종합)에서 <비밀의 정원>이 3주 연속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윤태호의 <미생> 등을 제친 결과다. 교보문고 집계를 보면 구매층은 여성이 89%로 압도적이다. 연령대 별로는 20대(49.5%)와 30대(32.0%)가 주를 이룬다. 기계적인 마케팅과 드라마, 영화 흥행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1위를 기록한 도서에는 지금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치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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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게 그려진 풀, 나비, 꽃, 올빼미들에 색칠을 하면서 정원, 숲을 떠올리니 내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색칠을 하는 동안 고민하는 건 ‘다음에 무슨 색을 칠하나’ 정도라 복잡한 머리 속이 단순해지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희열이 있다” 등이 새로운 색칠 놀이에 흠뻑 빠진 이들의 경험담이다 컬러링북의 인기는 한국인의 스트레스 강도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교한 밑그림 위에 여러 가지 색을 입히는 1~2시간의 유희가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안길 정도로 현대인의 삶은 바스라질 듯 메말라 있는 것이다.

 


세계인의 지지를 받다

컬러링북 열풍 중심에 선 ‘비밀의 정원’은 출간 1년 만에 13개국에서 반응이 뜨겁다. 미국에서만 13만 부, 영국에서 10만 부가 팔렸다. 전 세계 14번째로 한국에 소개된 <비밀의 정원>은 출간 일주일 만에 1만 부 가까이 팔리며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밀의 정원>을 출간한 ‘클’ 측은 “영국에서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한 컬러링북들이 프랑스로 건너가 테라피, 안티-스트레스의 용도로 활용되며, 성인용으로 보폭을 넓혀 시장이 크게 형성되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네이처> <아트 테라피> <블링블링 일러스트 컬러링북> <명화의 숲> 등 색칠하기 책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아트 테라피>(북샵일공칠)는 프랑스에서 나온 컬러링 북 시리즈의 1권이다. 구두, 가방, 옷 등 패션 아이템을 색칠하도록 했다. 국내 저자의 책도 나왔다. <마음으로 거니는 명화의 숲>(그여름)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클림트의 ‘키스’, 뭉크의 ‘절규’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명화 37점의 밑그림을 담았다. 저자는 아동용 색칠 놀이 책을 주로 만들어온 김재운씨다. 출판사는 아동용 도서를 성인이 사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거니는 명화의 숲>의 출간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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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거니는 명화의 숲>


왜 컬러링북인가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논리적, 이성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최근엔 ‘시각, 촉각 같은 감각을 먼저 자극해야 효과가 있다’는 이론 역시 주목받고 있다. 컬러링 북의 인기는 춤추기, 그림 그리기 등 예술 치료가 자연스러워지고 확대되는 분위기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심리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도 색칠놀이는 좋은 효과가 있다. 눈과 귀, 입으로 하는 활동은 그저 흘러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손으로 하는 작업은 실제로 드러나는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 심리 치료 자주 활용된다. 특히 컬러링북은 전문가들의 정교한 스케치 덕분에 그림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색칠만으로 아름다운 그림,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 되는 자기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어 성취감을 더 높여준다.

‘비밀의 정원’의 저자 조해너 배스포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책의 인기 비결로 “사람들이 직접 자리에 앉아 손으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해너는 유치원 시절 도안대로만 그리는 그림을 강요하던 선생님처럼 독자들을 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책의 여백은 사람들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림에 자신 없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그리라고 하면 주눅들겠지만 이미 그려진 공간을 색연필로 채우는 일에는 부담과 공포가 없다. 스트레스란 비교, 평가, 경쟁에 놓이게 될 때 발생하기 쉬운데, 색칠은 다른 누구와 비교되거나 평가되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자유롭다. 몰입해 작업하는 동안 디지털로 충만한 일상을 벗어나 아날로그적인 성취감을 느끼며 전에 없던 치유의 시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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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정인 기자 사진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456호(14.12.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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