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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가 문명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별다른 악의 없이 무례한 말을 내뱉곤 한다. 그렇게 자신이 누군가를 차별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매사에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신윤영 (<싱글즈> 피처디렉터)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5월 05일 목요일 제450호
   
 

회사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중년의 영업맨이 있는데, 이분의 매너 있는 화법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일단 상대가 누구든, 어떤 경우든 통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점심식사는 맛있게 했어요?” 그리고 상대가 여성일 경우 외모를 칭찬하되 그게 평가처럼 들리지 않도록 선을 유지한다. “화이트 원피스가 참 화사하네요” 정도에서 멈추지, 절대 그 원피스 안에 든 몸매까지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상대의 사생활을 캐묻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그는 “결혼했어요? 왜 안 했어? 만나는 사람은 있고? 나이도 있는데 빨리 해야지” 따위 오지랖 폭격이 쏟아지는 자리에서 “본인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한 유일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분의 사고방식이 남다르다거나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랜 세월 영업직으로 일해온 내공으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 만한 말을 본능적으로 삼간다는 인상, 즉 ‘신경을 쓰기 때문에’ 매너가 좋은 것이다. 남에게 막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게 무례하다는 걸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래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대체 무슨 권리로 타인의 정체성을 ‘반대’하고 ‘싫다’고 말하는가

‘어떤 말을 하는가’는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뿐 아니라 그에게 어느 정도의 사회적 권력이 있는가도 함께 드러낸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거리낌 없이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눈치를 보며 차마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회적 권력’이라는 것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최근 한 유통업체가 진상 손님에게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뉴스에 등장한 예시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세일 중이라는 점원의 안내에 “아가씨도 세일하나?” 했다는 경우는 듣고도 잠시 어리둥절했다. 남에게 이런 엄청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인가. 제공받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돈 몇 푼 낸 걸 ‘권력’이랍시고 휘두르는 건가. 왜 부끄러움은 매번 보는 이들의 몫일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박영희 그림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별다른 악의 없이 무례한 말을 내뱉곤 한다.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이지”는 수많은 여자들이 회식 자리에서 숱하게 들어왔고 여전히 듣고 있는 말이지만 같은 말을 남자 직원에겐 하지 않는다는 점, 만약 그 여직원이 사장의 딸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권력이 있는 쪽이 약자에게 가하는 무례함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북해요. 암튼 그냥 싫어요” “파리에서 길에 장애인이 너무 많아서 놀랐어. 한국에는 장애인이 별로 없잖아” 같은 말들의 천진난만한 무례함은 또 어떤가. 대체 무슨 권리로 타인의 정체성을 ‘반대’하고 심지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당신이 한국에서 장애인을 통 못 봤다면, 그건 장애인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이곳이 장애인들이 외출하기 무척 불편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2년 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기 위해 장애인 170명과 비장애인 30명이 고속터미널에서 승차권을 산 후 탑승을 시도하자 출동한 경찰이 최루액까지 난사하며 그들을 진압했다. 수년간 확충해달라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되었던 저상버스가 이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연행하기 위해 대거 동원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냥 웃자고 한 소리로” 무례한 말을 하고, 자신이 방금 누군가를 차별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더욱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 듣는 이의 처지를, 내게는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이들을. 건축가 미스 반데르로에의 말처럼 신이 디테일 안에 있다면, 매너도 분명 그 언저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사에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결국 문명사회란 ‘역지사지가 되는 예민한 이들로 구성된 곳’일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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