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해지는 이름.    고/ 려 / 인

종종 TV에서 고려인, 조선족 이런 주제로 프로그램하는 것을 본다.

아래 기사를 보면서... 동영상을 클릭하고 주연배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웬지 모르게 가슴 뭉클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럴싸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한국에와서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기 꺼리는 밭일하면서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주인공.

꿈... 희망... 이런건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게 아닐까?

 

 

무대인사도 한번 못하고 밭에서 무 뽑는 주연배우

HanI

[한겨레] 자기 삶 닮은 우즈베크 경찰 연기
‘사실주의 연기’ 호평받아
“기회되면 계속 연기” 연극원 지원

강원도 고랭지 무밭에서 일하는
외로울 틈도 없는 고된 일상
소망 물으니 “자유로움·평안·행복”


‘하나안’ 스타니슬라브 장

해까지 성급하게 일찍 떨어진 산골의 바람은 역시나 차가운데, 그는 빵모자를 벗더니 이마의 땀을 쓸어내리며 ‘후~’ 입김을 내뱉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자운1~4리 일대를 맴돌고 나서야,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밭 저 밭을 옮겨다니며 무 잎줄기를 칼로 쳐서 상자에 무를 담아 트럭에 싣는 일은 저녁 8시가 다 되어 끝났다. 같이 일하는 ‘반장님’은 “저 친구가 영화를 찍었다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라며 궁금해했다. 개봉 영화의 주연배우라면, 극장 무대인사라도 한번 다녀야 할 텐데 지금 그는 밭에서 무를 뽑고 있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검색하지 못하는 고랭지 무밭이 진짜 생활공간이기 때문이다.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4세인 스타니슬라브 장(32)은 11일 개봉한 독립영화 <하나안>의 주인공이다. 주차장 일을 하다 우즈베키스탄 경찰이 됐지만 내부 부패를 보고 그만둔 뒤 마약에 중독됐다가 새 삶을 찾아가는 ‘스타쓰’를 연기했다. 지난해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초청돼 그때 이 영화를 처음 봤다는 그는 “관객들 중 숨을 가장 크게 내쉬었죠. 너무 긴장해서…”라고 떠올렸다. 촬영 제작비가 3000만여원 정도였던 이 저예산 영화는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도 출품됐고, 대만 타이베이영화제 신인감독상까지 받았다.

[엔딩크레디트 세줄밑] ‘하나안’ 고려인배우 스타니슬라브 장



관객들은 절망적인 삶에서 헤쳐나오는 주인공의 감정을 강렬하고 묵직하게 전한 배우가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연기로 보여줘야 할 때 힘들었지만, 감독이 친구라 별로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고려인 4세인 박루슬란(31) 감독의 권유로 생애 첫 연기를 하게 됐다. “기회가 되면 연기를 계속 하고 싶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는 그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응시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7일 저녁 스타니슬라브 장이 묵는 민박집에서 기자는 “외로움은 간혹 어떻게 달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까 일하는 것 봤잖아요. 집에 오면 쓰러지니까 외로워할 새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인 반장, 다른 고려인들과 함께 강원도·전라도의 무밭·배추밭을 돌며 일당 벌이를 한다. 남동생도 같이 지낸다.

그가 국내 영화 관계자들한테서 ‘사실주의 연기’란 호평까지 듣는 것은, 어쩌면 우즈베키스탄의 선망 직업인 경찰관을 하다 한국으로 건너오는 극중 주인공 ‘스타쓰’의 삶과 비슷해서일 것이다. 그는 실제 4년 과정의 경찰 아카데미를 마치고 6년 동안 강력범죄를 다루는 경찰로 일하다 “여러 복잡한 이유”로 그만둔 뒤, 2009년 한국에 왔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넌 고려인이다’고 말해줬고, 열심히 일하는 고려인에 대한 자부심이 뼛속 깊이 있죠. 하지만 한국인들은 우리를 이방인, 외국사람으로 봅니다. 고된 밭 일을 택한 것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죠. 공장에서 일했다면 약간의 차별도 느꼈을지 모르죠.”

그는 “한국에서 지내는 이 시간들이 경찰로서 힘과 권력을 가졌을 때 겪은 마음고생과 상처들을 해소하고, 내 마음을 깨끗이 씻는 과정”이라고 했다. 영화는 불안한 삶이라도 다시 부딪쳐보는 ‘스타쓰’를 통해 삶의 희망을 비춘다. 한국말이 서툰 그는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해줄 말을, 이날 함께한 박루슬란 감독의 통역을 통해 전했다.

“삶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쁜 일보다,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빨리 알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크고 넓고 아름답기 때문에 작은 갈등과 작은 일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한국에 와서, 어떤 일이 생기면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는 무밭 일 때문에 개봉 이후 영화행사에 전혀 참석하지 못했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면 ‘당신의 꿈과 하나안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곧잘 받았을 법 하다. 하나안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러시아식 발음이다.

“돈을 모아 차와 집을 사겠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 그런 욕망이 지금 없어요. 새로운 내일이 나에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죠. 전 새로운 날이 오면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죠. 내일은 어떤 곳으로 가서 일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것을 기적이라고 여기며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해요. 사람들에게 비애를 주면서 살고 싶지 않고요. 정말 갖고 싶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바로 평안하게 사는 마음의 평화. 자유로운 인생을 원해요. 자유롭게 사는 것, 그게 내가 추구하는 하나안이죠.”

그러니까 이날 기자가 ‘이루고 싶고, 손에 쥐고 싶은 구체적인 소망’을 궁금해하면, 산골 무밭의 이 신인배우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지는 알지만…”이라고 웃으며 ‘자유로움·평안·행복’을 그 해답으로 돌려주었다.

홍천/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영상·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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